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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여왕벌은 벌통 밖에서 짝짓기를 하는가?

Paul.C 2015. 7. 27.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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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사진에서 여왕벌이 바로 보이시나요? 보인다면 이미 양봉에 경험이 있는 분이십니다. 맞나요? 아닌데도 여왕벌이 보인다면, 아주 탁월한 관찰력을 소유한 분이십니다. ^^ 


여왕벌은 태어나서 딱 한번 짝짓기(교미)를 해서 평생동안 수정된 알을 낳을 수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니까 한번의 짝짓기를 통해 여왕벌의 몸안에 수벌의 정액을 가지고 있으면서 알을 낳을 때마다 수정을 하여 알을 낳는 것입니다. 많은 학자들이 짝짓기를 관찰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실험하면서 오늘날 이러한 사실이 알려졌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왜 불편하고 어려운 방법으로 짝짓기를 하는가 입니다. 그냥 벌통 안에서 짝짓기를 하면 아주 편리할 것 같은데 말입니다. 태어난지 얼마되지 않아 비행을 통해 수벌을 만나 짝짓기를 하니까 말입니다.  


벌이 직접 되보지 않는 한, 이러한 이유에 대해서 우리가 직접적으로 규명하기는 어렵습니다. 보통 본능적으로 그렇게 행동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조물주께서 그렇게 프로그램을 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왜 그랬을까? 그 이유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야기의 시작은 왜 밖에서 교미를 할까? 로 시작하지만, 생각나는 대로 이야기를 해 나가겠습니다. 


그리고 과학적인 사실이 아닌,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본인의 의견임을 말씀 드립니다. ^^



  • 자연은 약육강식의 법칙을 따릅니다.
    강한 것이 살아남아야 되는 이유가 분명히 있습니다. 이런 법칙은 자연상태로 살아가는 인간에게도 그대로 적용이 되었습니다. 티벳의 경우를 한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티벳의 자연환경은 척박하기 그지 없습니다. 인간이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 중에서 혹독한 겨울과 아직 개발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지역에서는 더욱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면, 며칠 뒤에 아이를 데리고 가서 아주 차가운 고인물에 몇시간 동안 놔둔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결국 살아남은 아이만 키웁니다. 잔인하지만, 그런 환경에 살아보지 않고 함부로 이야기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얼마나 사는 것이 쉽지 않았기에... 최소 그들도 인간의 탈을 쓰고 그렇게 할 수 있겠습니까? 그 만큼 살기가 어렵다는 의미로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지금은 그렇지는 않겠지요? 

    그리고 인간의 정자와 난자가 만나는 과정은 거의 절정에 이릅니다. 우리의 인생은 태어날 때부터 경쟁을 통해 결정이 되었습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수억마리의 정자가 동시에 출발하여 난자와의 랑데브를 통해 운명이 결정됩니다. 보통 1마리가 들어가지만 그 이상이 들어가기도 합니다. 이렇게 경쟁에서 살아남은 것이 바로 우리입니다. 

    그럼, 여왕벌의 경우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여왕벌은 태어나자 마자, 왕대를 찾아가서 아직 남아있는 모든 여왕벌을 죽이는 본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태어나자 마자 경쟁을 해야되는 처지인 것 입니다. 그리고 벌집 전체의 생사를 책임져야 하는 막중한 책임감을 본능적으로 가지고 있을 것 입니다. 그래서 경쟁적으로 보다 다른 벌통의 개체보다 우수한 후손을 만들어야 합니다. 여기에서 여왕벌의 짝짓기 비행을 생각해 봐야 겠습니다.  

    벌집 안에도 수벌이 일부 존재합니다. 그런데 벌집 안에서 짝짓기를 하게 되면, 배우자의 개체군이 작고,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자연의 치열한 경쟁으로 보기에는 너무나 빈약해 보입니다. 여왕벌은 본능적으로 최고의 배우자를 만나야 됩니다. 그래서 비행을 통해 여왕벌 자신을 따라잡을 수 있는 수벌을 만나 사랑을 나눠야 합니다. 여기에서 또 한가지 재밌는 사실은, 여왕벌과 짝짓기한 수벌은 교미한 후에 죽습니다. 수벌 자신의 목숨을 걸고 해야되는 이벤트 인 것 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대단한 경쟁을 해야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정말 죽는 힘에 다해 다른 수벌을 따돌리고 여왕벌을 잡기 위해 모든 힘을 쏟아 부을 것 입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 수벌이 죽는 것이 이치에 맞습니다. 왜냐하면 짝짓기가 끝난 수벌은 더 이상 쓸모가 없기 때문입니다. 만약 벌집으로 다시 돌아간다면, 일벌이 모아둔 꿀만 축내고 그냥 빈둥빈둥 시간을 보내야 하기 때문에 아주 비효율적입니다.  


  • 개미의 세계도 벌의 것과 동일합니다.
    여왕개미도 여왕벌과 동일한 방식으로 짝짓기를 하고 집으로 돌아가 평생을 알을 낳습니다. 여기에 미치는 생각은 동일한 조물주께서 이러한 프로그램을 만들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성경을 보면, 신은 인간의 속성을 가지고 있고 어떤 법칙(선악)같은 것이 존재합니다. 그러니까 생각할 수 있는 패턴이 만들어낸 결과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신을 인간의 영역으로 끌어내린 오류일 수도 있겠지만, 나름의 개연성은 있어 보입니다. 더 확장시킨다면, 동일한 패턴으로 만들어 졌다는 가정하에 그러한 개미와 벌을 만든 신이 인간을 또한 만들었다고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 그렇다면 왜 한번의 짝짓기만을 할까요?
    그리고 왜 수벌은 한번의 짝짓기 이후에 죽어야 할까요? 살아남은, 그러니까 아직 짝짓기를 하지 않은 수벌은 월동철이 되기 전에 무리로 부터 쫓겨나서 추위에 떨다가 얼어 죽습니다. 자연의 원리는 잔인해 보이지만, 전체가 살기위한 최선의 선택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어찌보면 이것도 공평해 보입니다. 
    수벌은 그만큼 살아있는 동안, 꿀과 화분을 모으는 일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짧고 굵게 살다가 생을 마감하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자연은 본능적으로 가장 효율적인 방법인 선택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여왕벌이 수정된 알을 낳기위해 매번 비행을 해야된다면, 참으로 고역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벌집 생태계를 유지하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는 수벌을 상당한 숫자를 보유하고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상황들을 생각해 보면, 한번의 비행으로 가장 강한 수벌을 만나 교미를 하는 것이 제일 효율적 입니다. 

벌에 대한 책을 읽다가 갑자기 든 생각을 여과없이 적어 보았습니다. 이러한 부분적인 자연을 생각해 볼때,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개념은 효율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효율의 개념을 인간사에 적용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티벳의 경우는 예외적인 경우라고 봐야 될 것 같습니다.


'잔인하다' 라는 표현이 제일 잘 어울릴 것 같습니다. 이렇게 보면, 인간을 만든 조물주와 그런 자연을 만든 조물주가 다를까요? 왜냐하면 위에서 이야기한 패턴이 깨졌으니까요. 개인적으로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인간은 특별히 자연과 다르게 구별되어 만들어 졌다고 생각합니다. 살아서 움직이는 것 중에서 제일 월등한 존재입니다. 그러니까 제일 심혈을 기울여서 만들어 졌고, 신의 속성을 담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휴머니즘이 있는 영화를 좋아합니다. '잔인한 것'과 위배되는 것이 휴머니즘이며, 이것이 우리 인간이 자연과 구분되어지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인간은 이런 휴머니즘에 감동을 받고 아름답다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ㅎ 여왕벌 이야기하다가, 너무 멀리온게 아닌가 합니다. 더 이야기하다가는 어떻게 끝을 내야할지 모르게 글이 흘러가고 있네요. 


그만 줄여야 겠습니다.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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